6.70년대 때 북한이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는 것은 말짱 허구입니다. 60년대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겨울철에 노름하는 가장을 둔 집만 힘들었으며, 70년대 중반세 이미 샴프 및 주방세제를 쓰기 시작했고요. 서울로 유학,취업한 자녀와 함께 남산,창경원 다녔던 것도 60년대 중.후반 즈음이었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울 초교생들은 봄.가을에 소풍(원족)을 교외선, 경의선,경원선 열차타고 다녔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청년들은 등산화 마춰신고(그 당시 등산화 수제화집이 아직도 미아리고개에서 영업 중) 설악산까지 등뱐하고 여름엔 장항선 열차타고 대천, 만리포 등 해수욕도 다녔습죠. * 열차 안에서 기타치고 노래불러도 관대했던 시절.
2006년 쯤의 남북 신장비교 자료가 있습니다. 탈북자들 평균신장을 남한 동년배들과 비교했더니, 해방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남한 평균이 더 큽니다. 가령 1946년생은 성장기인 대략 46년~66년 기간에 더 잘 먹었으니까 키가 더 큰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장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60, 70년대에 북한의 군사력이 더 셌을 지는 몰라도, 먹는 건 남한이 대체로 훨씬 나았습니다.
난 73년생인데 대한민국은 70년대까지 도시와 시골은 격차가 심해서 도시에서는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시골은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가족 중에 누구 하나 도시로 나가 돈 벌면 그 돈으로 같이 먹고 살았습니다 가족 중에 도시에 나갈만한 사람이 없으면 끼니 굶는 사람들 많았습니다
북한은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50년대, 60년대 초까지는 남한에도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말로 가난했습니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을 겁니다. 당시의 생활상을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서울은 중심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온통 판자촌이 가득했었습니다. 집집마다 식구는 많은 데,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서 아버지가 끼니 마련도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에도 거지들이 많았습니다. 구두딱이 껌팔이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거지들이 구걸할 때, " 밥좀 주세요~ 네~ 찬밥이나 쉰밥도 좋아요~ " 라며 구걸하던 것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시는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서 서울역, 남대문 시장 등에는 지게꾼들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또한, 동네 골목에는 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네마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서 목욕은 1년에 한 두번 밖에 못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61년대 초 박정희가 구테타를 일으킨 이후부터는 미국의 밀가루 원조 덕분에 굶지는 않았지만, 3끼 모두 수제비를 먹기도 했었고, 나중에는 꽁보리 밥을 먹었습니다. 지금도 수제비와 보리밥은 처다 보지도 않습니다.
@haegonshin4521 24
2025년 3월 31일 5:15 오후60년부터 살아온 제가 보기에 이민복박사가 남북 비교를 가장 현상평가를 정확하게 하는 것 같네요
@플러그인-g3d 23
2025년 3월 31일 5:48 오후저는 중국국경에서
여행객들이 북한사람들 원숭이 보듯
신기해하며 사진찍는게 너무 충격적이였음..
같은 동포라그런가 너무 불쌍해보였음 ㅜ
물론 김가빼구요..
@전전승운 21
2025년 3월 31일 5:48 오후70년대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빵을 주었어요 밀가루 미국에서 박정희대통령이 원조 얻어와서 집집마다 칼국수 수제비해먹던기억있 습니다 쌀밥도시락가져가면 혼식하라고 선생님 한테혼나던 생각납니다
@CH신사임당 18
2025년 3월 31일 11:09 오전[이민복 단장]
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단장
북한과학원 출신
@정종화-x9c 16
2025년 3월 31일 5:35 오후이민복 단장이 말씀이 맞습니다...
@박창규-z1p 13
2025년 3월 31일 7:24 오후6.70년대 때 북한이 한국보다 더 잘 살았다는 것은 말짱 허구입니다. 60년대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겨울철에 노름하는 가장을 둔 집만 힘들었으며,
70년대 중반세 이미 샴프 및 주방세제를 쓰기 시작했고요.
서울로 유학,취업한 자녀와 함께 남산,창경원 다녔던 것도 60년대 중.후반 즈음이었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울 초교생들은 봄.가을에 소풍(원족)을 교외선, 경의선,경원선 열차타고 다녔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청년들은 등산화 마춰신고(그 당시 등산화 수제화집이 아직도 미아리고개에서 영업 중) 설악산까지 등뱐하고 여름엔 장항선 열차타고 대천, 만리포 등 해수욕도 다녔습죠.
* 열차 안에서 기타치고 노래불러도 관대했던 시절.
@까탈리아 12
2025년 3월 31일 6:27 오후60년대초 서울사람들 쌀 .주식이였습니다 납짝보리 조금섞고 밀가루 수제비 떠먹고요 초등핰교 급식으로 옥수수빵 하위서민층자녀들 급식했습죠 지방 농촌에서는 옥수수 죽을 배식했다고하네요 태백 장성에서는 미니버스 역까지 운행했습니다 내가😂산증인입니다 수산물은 오징어 동태 꽁치 간고등어 이면수 참 많이잡혔어요 이선생님 정확하게 보셨네요 이선생님 화이팅..
@Kim-ig3qq 11
2025년 3월 31일 6:42 오후부모님은 땅 한평없는 소작농...60년대에는 춥고 배고픈 시기...
꽁보리밥 무우밥 콩나물밥 국시 갱죽으로 끼니를 때움..
끼니를 거른 기억은 없어요.
봄에는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다니며 찔레 송기 먹고
가을에는 산에 올라 머루랑 다래 어름 따서 배를 채웠습니다.
아버지가 부역나가서 노임으로 밀가루 한포대 메고 오시면 어머니는 손국시 삶아 온식구들이 멍석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죠.
그러다가
1970년대 초반 통일벼가 재배되고 중학생이던 1974년경부터 쌀밥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정말 행복했죠.
남한은 1974년부터 소작농 자식들도 쌀밥을 배불리 먹었습니다.
@피터팬-d2o 11
2025년 3월 31일 5:44 오후2006년 쯤의 남북 신장비교 자료가 있습니다.
탈북자들 평균신장을 남한 동년배들과 비교했더니, 해방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남한 평균이 더 큽니다.
가령 1946년생은 성장기인 대략 46년~66년 기간에 더 잘 먹었으니까 키가 더 큰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장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60, 70년대에 북한의 군사력이 더 셌을 지는 몰라도, 먹는 건 남한이 대체로 훨씬 나았습니다.
@koutsider8266 10
2025년 3월 31일 5:29 오후흑백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를 보면 60년대 초의 밑바닥 서민 생활을 엿볼 수 있습니다. "국제시장"을 통해 중산층의 가난극복의 과정을 단편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과거 들딱들의 고난의 시대였고 가난 극복의 험난한 여정 이었지요.
@haegonshin4521 10
2025년 3월 31일 5:19 오후이박사가 북한의 제대로 배운 그리고 양쪽을 균형있게 경험하고 연구한 지식인이구나
@S.new-o9l 10
2025년 3월 31일 7:26 오후남한에서 살아온 57년 생인데
실상을 정확히 잘 짚어 주시네요. 우린 어릴때 쌀이 부족해서 분식장려로 국수를 많이 먹던게 생각나네요.
@일일-l7m 9
2025년 3월 31일 9:03 오후이민복박사님말씀이맞습니다저는49년생농촌출신인데그당시국민하교다니면서곡식이봄이되면보리고개가있었죠그래도굶어죽은이웃은없었던같아요그런걸생각하면북한보다는그때도더잘살았지않나생각됩니다
@링크젤다-v9k 8
2025년 3월 31일 7:15 오후이분현명하시네
@haegonshin4521 8
2025년 3월 31일 5:21 오후이 영상은 살아 있는 역사자료인듯
@soojun3185 7
2025년 3월 31일 9:54 오후요즘 사람들 가난이라는” 단어 “를모릅니다.공산당은 사람을 바보로만드는걸 모르는게 문제이죠.
@서상진-f8o 7
2025년 3월 31일 9:14 오후지인이 철원에서 사단장할때 이민복 님을 찾아가서 만났는데, 굉장히 총명하고 성실하고 검소하고 정말 북한 우리 동포를 열열히 사랑하는 그 마음을 느꼈다고 했어요..
@시피아노 7
2025년 3월 31일 8:45 오후저는 70년대 초등학생 이었고,6식구,펌푸와 수도.연탄.석유곤로.
기와집,방세개짜리. 비교적 가난했는데
하루세끼 쌀밥을 배불리 먹었어요.
아침마다 병우유 배달해서 먹었고,
밥맛없다 하면 엄마가 복숭아 통조림을 사다주셨어요.
지금처럼 부유하진 않았어도 부모님의 사랑으로 행복한 어린시절..
@나천주-w8f 7
2025년 3월 31일 8:09 오후박대통령님을 독재자라고 말하면 절대 안됩니다 그분이 있어서 지금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고해도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 박대통령님 같은분이 한분만 더 지금 시대에 계셨다면 과연 대한민국은 훨씬 더 부한 강국이 되었을것입니다
@박병건-h7z 7
2025년 3월 31일 7:35 오후정확한 분석입니다 ᆢ
@다람쥐-x2d 6
2025년 3월 31일 9:02 오후무엇보다 남한은 6,70년 당시 못살아도 자유는 이었으니 그렇게 힘든즐 몰랐음.
@sook3580 6
2025년 3월 31일 7:30 오후이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북한이 남한보다 잘살은 때는
결코 없었읍니다 .
국가주도의 조작된 통계에 의해서 잘못 알려진탓이죠 . 제가 지금 70인데 제가 어렸을
때도 강원도 농촌에서 쌀밥 먹고 잘지냈읍니다 .
@EM-rg9vb 6
2025년 3월 31일 6:15 오후60년대 후반 1인당 GDP로 보면 둘 다 못살았고 그나마 북한이 나았다는 수준임. 한국이 260불 북한이 350불 정도 수준임. 1974년 부터는 한국이 뒤집고 1979년에는 두배 차이로 벌어지기 시작했슴.. 지금은 60배 넘게 차이 남
@0시간의숲0 5
2025년 3월 31일 5:33 오후썸네일보고 생각보다 북한이 잘 사는 줄 알았네...
대부분 북한이 남한보다 못 사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사이다-x1l 4
2025년 3월 31일 5:07 오후개방안하고 권력유지만 하려하고 개혁안하고 그려면 대한민국도 저꼴나는거다
@호두-g9x 4
2025년 3월 31일 8:05 오후내나이' 70인디 70대 일요일은 놀러다녔지요
@나오미-z7e 4
2025년 3월 31일 6:48 오후새마을운동 동원되는것도 짜증인데 모여놓고 집단주의로 모이고 노동시키고 빨갱이사상교육 자유가없었다니 얼마나힘들었을까 서로감시하게하는 시스 템인걸알았지만 나는 부모님이 실향민 인데 남한에서 태어나서 다행 하나님 감사합니다
@haegonshin4521 3
2025년 3월 31일 5:20 오후일반 탈북자 얘기는 자기가 경험하고 아는 지식과 정보와 판단만 기준으로 하다 보니까 참 앞뒤 안맞았는데ᆢ
@노인균-i4n 3
2025년 3월 31일 6:58 오후난 73년생인데 대한민국은 70년대까지 도시와 시골은 격차가 심해서 도시에서는 먹고 사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시골은 먹고 사는게 힘들어서 가족 중에 누구 하나 도시로 나가 돈 벌면 그 돈으로 같이 먹고 살았습니다
가족 중에 도시에 나갈만한 사람이 없으면 끼니 굶는 사람들 많았습니다
@한정란-p2u 2
2025년 3월 31일 6:42 오후맞는 말씀
@hyojeonglee9099 2
2025년 3월 31일 9:52 오후부정선거 없다고 살짝 얘기하시네요
지금 부정선거로 비상계엄 선포하셨다는데
의심 가는 발언을 하시네요
@윤명국-j7j 2
2025년 3월 31일 6:27 오후인프라 투자를 절대 안함! 인력을 맘대로 부릴수 있으니 돈 들어가는 기초산업에 절때투자안함 !사람손을 개떼같이 시키면 되니까!
@sothdtkskdl 1
2025년 3월 31일 6:44 오후무너져도 문제 아닌가? 골때리네
@김남호-j3n 1
2025년 3월 31일 6:23 오후저는 62년생인데 이제 공부됩니다.!
@cjpark3001 1
2025년 3월 31일 9:08 오후2025년 현재 북한은 세계 최빈국 나라중 하나이고 대한민국은 세계12위 경제국 입니다. 시장경제로 통일되는 한반도는 G7 국가 안의 경제부국 나라로 기대 됩니다. 그러나 중국,김정은 통일 싫어 합니다
@yel7372 1
2025년 3월 31일 9:39 오후이런분이티비에 많이 출연하셔야되는거죠
헬조선 지어낸 사람들 좀보시게요
@장중화-r8o
2025년 3월 31일 6:30 오후정말로 맞는 말입니다. 1960년까지는 북한 주민의 생활이 나았는데 1970년부터는 남쪽 생활이 좋았습니다. 단, 1970년 명태는 북한 사람이 더 많이 먹었지요. 그때 북한에서 명태는 질려서 땅에 묻는다 했을 정도 였으니.
@davidshin9200
2025년 3월 31일 11:09 오후촬영 사무실에 생화 꽃 전시하시고 LED조명으로 살리세요 ..
@inkeunkim9178
2025년 3월 31일 10:28 오후북한은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50년대, 60년대 초까지는 남한에도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정말로 가난했습니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을 겁니다.
당시의 생활상을 말하자면 끝이 없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서울은 중심가 일부를 제외하고는 온통 판자촌이 가득했었습니다.
집집마다 식구는 많은 데,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서 아버지가 끼니 마련도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에도 거지들이 많았습니다. 구두딱이 껌팔이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거지들이 구걸할 때,
" 밥좀 주세요~ 네~ 찬밥이나 쉰밥도 좋아요~ " 라며 구걸하던 것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당시는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서
서울역, 남대문 시장 등에는 지게꾼들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또한, 동네 골목에는 깡패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동네마다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서
목욕은 1년에 한 두번 밖에 못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61년대 초 박정희가 구테타를 일으킨 이후부터는
미국의 밀가루 원조 덕분에 굶지는 않았지만,
3끼 모두 수제비를 먹기도 했었고, 나중에는 꽁보리 밥을 먹었습니다.
지금도 수제비와 보리밥은 처다 보지도 않습니다.
60년대 말 또는 70년대 되어서야
쌀밥을 먹는 횟수가 많아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r5o6g
2025년 3월 31일 11:29 오후제가 65년생 전라도인데 고구마 감자 옥수수는 간식이었지 주식은 아니었음. 그때 팥칼국수를 많이 먹얶는데 진짜 밋있었죠
@김준희-j3s
2025년 3월 31일 11:12 오후흐흐흐흐 흐흐흐흐
@yuwoncom
2025년 3월 31일 6:45 오후한국말 아니네요
@오초인-e9o
2025년 3월 31일 10:30 오후북한 얘기 지겨워
@이주헌-x3p
2025년 3월 31일 7:37 오후부부간에도 말이안통하는데 남북한의
대화??? 포기하시라요!!!
@도사-o5j
2025년 3월 31일 11:14 오후팩트폭행. 틀린 말 하나없네요. 잘들었습니다.
@홍경래-y6v
2025년 3월 31일 8:56 오후내가지금80대인데 70년대에 남한큰홍수가 났을때 북한 김일성이가 남한이못살아서불상하다고 도와주겠다고 쌀을보내준다고해서 전두환대통령이 받겠다고해서 받아서 쌀이 너무 안좋아서 떡들을해먹은 기억이있읍니다 김일성이 북한이 남한보다 잘산다고 도와준겁니다 기억이납니다
@김수영-h3k
2025년 3월 31일 9:46 오후1. 숨 좀 쉬면서 말씀하세요.
2. 숨도 안 쉬고 말씀하시니까 전달력이 떨어집니다.
@명선123
2025년 3월 31일 10:13 오후죄명이가추구하는나라.사회주의.평등사회.인민공화국.
@임진각-j4l
2025년 3월 31일 6:54 오후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줄을 잘 선 것이지요. 미국에 줄 댄 것이 경제를 성장케한 원인입니다. 독재정치는 개떡이었지만...
@오초인-e9o
2025년 3월 31일 10:27 오후🎉🎉🎉🎉🎉🎉🎉🎉🎉🎉🎉🎉🎉🎉🎉🎉